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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가 보육원 자리 있나 물어보면 응답이 덜 적극적으로 옴 (이런 연구 계속해도 되나…?)

Discrimination on the Child Care Market: A Nationwide Field Experiment

by Henning Hermes, Philipp Lergetporer, Fabian Mierisch, Frauke Peter, and Simon Wiederhold (CESifo working paper no. 10368)

연구는 매우 간단하다: “18개월 된 아이가 있는데, 어린이집 자리가 있나요? 있다면 어떻게 지원해야 하나요?”라는 이메일을 독일 전역에 있는 18,000개 이상의 어린이집에 ‘가상의’ 발송자 이름으로 보내 보니, 이민자 이름으로 보냈을 때 응답이 덜 오고, 온다 해도 덜 적극적으로 온는 걸 확인했다.

이게 재밌어서 언급하려 하는 건 아니고, 이런 식의 연구가 과연 괜찮은 연구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기록하기 위해 적는다.

실험경제학에서 다루는 경제학 실험은 여러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아주 중요한 하나의 특징은 NO DECEPTION이다. 실험 참여자를 절대 기만하지 않는다. Complete information과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 확률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확률적으로 일어난다고 말해주는 건 (예를 들면, 주사위를 굴려서 나온 숫자대로 돈을 준다고 말하고 나서, 컴퓨터가 굴린 주사위 결과대로 돈을 주는 건) deception이 아니다. 주사위를 굴려서 6이 나왔는데, ‘1이 나왔다’고 말하는 건 deception이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deception을 이용한 방식으로 실험을 하면 경제학 저널에서는 즉각적으로 리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든 실험경제학자들이 deception을 절대 하지 않는 것은 이 deception에 대한 contamination이 어느 정도까지 미칠 지 확인하기 어려워서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퀴즈 100문제를 풀고 맞춘 숫자대로 돈을 준다고 해보자. 거의 모든 문제를 잘 풀었으리라 믿고 있는 당신에게, “100문제 중 2문제 맞추셨으니 여기 200원 드립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몇 분 후에 “짜잔, 여기까지는 몰래카메라였습니다. 근데 이제부터 하는 거는 진짜에요.”라고 말하면, 그 사람 말을 얼마나 믿을 것인가? 나아가, 그 사람이 하는 일련의 실험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나아가, 그 사람이 하는 혹은 그 실험이 일어난 곳에서 다른 실험에 참여하게 되면, 실험 안내를 얼마나 곧이곧대로 믿을 것인가? 나아가, 실험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확장해보면, 한 번의 기만행위가 어떤 범위에서 어느 정도까지의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걸 깨닫을 수 있다. 그래서 기만 행위는 절대 실험 조건에 넣지 않는 것이다.

필드실험을 이용한 연구에는 이 불문율을 깨는 듯한, 그래서 내 기준에는 좀 이상한, 것들이 간혹 나온다. 위에 언급한 논문의 실험이 그렇다. (내 과거 동료도 링크드인에 가상 프로파일을 수 백개 만들어서 취업관련 컨택을 했을 때 응답이 어떻게 오는 지를 확인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그 연구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이 모든게 가짜 레쥬메를 보내고 응답을 분석한 Bertrand and Mullainathan(2004)부터 비롯됐다. 이 연구가 나올때도 연구윤리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일단 어린이집 자리를 찾는 연락을 하는 실제 주체가 없다. 같은 이메일을 그냥 복사 붙이기 해서 발송하되, 발신인 이름을 가상의 독일인 이름으로 보내거나 가상의 이민자 이름으로 보낸 거다. 따라서 이메일을 수신자들의 응답은 연구자들에게는 연구 자료가 됐지만, 실제의 가치 없이 낭비된 시간이다. 그리고 이런 연락에 아무런 팔로우없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후에 실제로 어린이집 자리를 찾기 위해 연락하는 사람들은 응답을 받기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에, 실험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이들에게 동의받지 않은 부정적 외부효과를 전가한 것이다.

연구윤리의 경계선 바깥에 있는 방법이 연구 질문을 아주 깔끔하게 답하기 위해서 필요할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도 이런 연구는 좀 덜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