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랑 쌤유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두서없이 짧게 적는다. 이 블로그의 목적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적고 싶다.
격리가 끝나고 나서 연대에 방문자 오피스를 얻으러 왔다. 그리고 성대에 내년 3월에 조인할 것을 확정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연대 교정을 걷는데, 많은 곳에 추억이 묻어있어서 그런지 교정이 유난히 더 아름다워 보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아 여전히 멀고 가기 힘든 곳’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아마 앞으로는 이 곳이 내 직장이 되지는 않을거란 생각을 확정하게 되니 ‘가질 수 없어서 아름다운 곳’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모니터가 없어서 작은 노트북 화면으로 일을 하자니 불편해서, 밤 열시에 중고 모니터를 사들고 대우관에 다시 돌아왔다. 이미 해가 진 지는 오래고, 여기에 나 말고 누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건물 입구를 향하는데, 익숙한 뒷모습이 몇 미터 앞에 가고 있었다. 밤 열시에, 간식거리를 사들고 다시 상대에 올라오신 유병삼 교수님이었다.
택시를 타고 올라오는 중에, 점심을 같이 먹은 김상현 교수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떤 시니어 교수는 이렇게 본인의 이익을 위해 빅똥을 싸고 다닐 수 있는지, 어떻게 그런 사람이 학계에 있는 건지, 학내 정치를 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변할 수 있는지, 시니어가 되면 이런 저런 다른 일들에 눈이 가게 될 수 밖에 없는지를 얘기했었다. 그걸 떠올리며, ‘나는 유병삼 교수님같은 분의 제자여서 너무 복받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내가 성대에 간다고 하면, “한눈팔지 말고 연구 열심히 할 수 있게 스스로를 다잡으라”고 하시겠지… 이런 저런 상황에 맞춰서 융통성있게 이익을 챙기라고 말씀하시지도 않거니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거 자체를 한심하게 여기시겠지…’ 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교수님을 뵌 것이었다.
짧은 안부를 나누고, 성대에 가기로 했으며, 작년에 연대에 지원했으나 아쉽게 되지 않았고, 인연이 닿지 않아 성대에서 계속 일을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한국에서는 한눈 팔 일이 많고, 스스로 일관된 연구태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무너지기 쉽우니, 연구 열심히 할 수 있게 자세를 다잡으라”고 말씀해 주셨다.
10초만에 10년 전 나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깜깜한 밤. 밤에 연구실에 있는 게 당연한 듯한 쌤유. 한눈팔지 말고 연구 열심히 하라는 일관된 말씀… 인사드리고 나오는 길에 복잡한 마음에 눈물이 찔끔 나올 뻔 했다. (집에 가서 유리한테 얘기해줬더니 유리도 웃으면서 울었다.)
나는 많은 행운을 얻었다. 박사과정을 수월하게 했고, 지도해주신 분들이 모두 모범이 되는 좋은 분이셨다. 유병삼 교수님의 제자인게 자랑스럽고, 내 삶의 멘토가 될 수 있는 분을, 그걸 깨닫기 전부터 알고 지냈다는 것에 감사한다. 나의 자랑 쌤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