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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

한순구 교수님께서 최근 ‘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 2’를 출간하셨는데, 그 김에 1,2권을 같이 사서 읽어봄. 이 포스팅은 1권에 대한 기록.

모든 챕터가 ‘역사적 사건’과 ‘게임이론에서 배우는 내용’을 연결해서 설명하고, 현대 기업이나 조직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뭔지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묘사는 과감히 줄이고 내용만 기억할 수 있게 요약하고자 함. 디테일을 놓치는 중에 요약을 잘못했을 가능성 있음.

  1. 비협조적 게임 이론과 항우의 운명 (내가 임명한 부하들이 왜 나를 위해 싸워주지 않는가?)

    • 초나라의 유명한 장수 항우는 초나라의 왕 의제를 충분히 통제하지 못한 채로 진나라를 평정하는 전략을 취했는데, 모두가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한다고 가정하는 비협조적 게임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좋은 전략이 아니었다.
    • 진나라 평정 이후 공을 세운 각 나라 장수들에게 영토를 서둘러 나누어 줬는데, 덜 나눠받은 사람의 불만을 누그려트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미 보상을 받은 사람이 더 충성할 유인을 없앴다는 점에서 좋은 전략이 아니었다.
    • 진나라 평정 후 관중 땅을 차지해서 자원을 더 확보했어야지, 초나라로 돌아가 초왕이 되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니었다.
  2. 한신에게 귀띔해주고 싶은 게임이론 ‘백워드인덕션’ (일은 내가 다 하는데 어째서 승진은 다른 사람이 하는가?)

    • 토사구팽은 토끼를 잡는 일을 다 한 사냥개는 삶아진다는 뜻의 사자성어로, 혁혁한 공을 세운 한신을 유방이 내친 것을 이에 비유하곤 한다.
    • 백워드인덕션(backward induction)은 이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생각하여 역으로 현재 어떤 전략을 취할 지 결정하는 방식이다. 토끼 사냥을 다 한 다음 삶아질 걸 아는 사냥개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능력을 인정받을 만큼 토끼를 충분히 잘 사냥하되, 전멸시키지 않을 거다. 한신은 그런 전략을 취했어야 했다.
  3. 로마가 ‘코어’와 ‘새플리 밸류’의 개념을 알았더라면 (세상이 변했는데 기준과 제도를 그대로 둔다면?)

    • 코어(Core)와 새플리 밸류(Shapley value) 둘 다 협조적 게임이론에 나오는 용어로,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답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대충 요약하면) 코어는 구성원 개인 혹은 구성원의 부분집합이 집단에서 이탈할 유인이 없는 자원 배분 방식, 새플리 밸류는 한 개인이 집단의 가치에 얼마나 공헌했는지를 바탕으로 한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일종의 신상필벌을 하는 방식에 대한 솔루션 컨셉이라고 생각할 수 있음.
    • 외부의 적 카르타고를 함락하였을 때는 로마와 동맹시가 같이 힘을 합쳤지만, 그 이후에는 동맹시에 대한 적절한 신상필벌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것이 로마의 쇠퇴를 가져왔다.
  4. 당 태종 이세민과 ‘홀드업’ 문제 (후계자 결정의 모범 답안은 과연 무엇일까?)

    • 홀드업 문제(Hold-up problem)는 공동의 이익이 생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쪽이 특정 관계 내에서만 유효한 투자를 하고 난 후 불리한 조건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염려되어 다른 의사결정을 하는 상황을 묘사한다.
    • 가령 자동차 핸들을 만드는 기업A가 특정 자동차 회사 B에서만 독점적으로 쓰일 수 있는 특별한 형태와 기능을 갖춘 핸들을 만들어 제공하기 위해서는 되돌릴 수 없는 설비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투자를 하고 생산을 마친 이후에는 B회사가 가격을 후려치는 등의 갑질을 해도 다른 데 팔 곳이 없기 때문에 오롯이 그 갑질을 당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는 A회사는 실제 설비 투자를 하고 얻게 될 공동의 이익이 더 클 상황에도 투자를 안할 것이다.
    • 당 태종 이세민은 당의 초대 황제 이연의 둘째 아들인데, 천하를 제압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으나, 형이 황태자가 되고 자기는 천책상장이 되어 불만이 있었고, 친형과 친동생을 죽여 태종이 되었음. (개인적으로는 후계자 선정 문제와 홀드업 문제가 아주 타이트하게 연결된다는 느낌이 아니었음. 굳이 따지면, 이세민이 relationship-specific investment를 했으나 그 이후 보상을 충분히 받지 않은 기업 A에 대응되는 사람일 수 있음.)
  5. 팀에서의 도덕적 해이 이론을 통해 본 삼국통일의 비결 (강자가 약자에게 패배하는 까닭은?)
    •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는 쉽게 ‘안들키는 뺑끼’라고 생각하면 된다. 성과가 팀 단위에서만 관측되고, 개별 팀원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검증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개별 팀원이 안 들키는 수준에서 요령을 피울 가능성이 있다. 책에서는 피아노를 옮기는 일꾼 네 명의 사례를 들었다. 누군가 힘을 덜 쓰면 분명히 팀 생산성—시간 내 옮기는 피아노의 수—은 떨어지는데, 누가 힘을 덜 쓰고 있는지 확인이 어렵다.
    •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제일 작아 보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은 김춘추, 김유신, 선덕여왕의 도덕적 해이가 없었기 때문일 수 있다. 각자 도덕적 해이를 극복하고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6. 가마쿠라 막부의 실수와 ‘레퓨테이션 게임’ 전략 (작은 실수 하나가 어떻게 거대한 몰락을 가져오는가?)

    • 가마쿠라 막부는 천황 체제에서 벗어나 무사 계급이 일본을 장악한 최초의 막부로 140년 넘게 세력을 떨쳤는데, 반란이 일어난 오사카의 작은 성을 100일 넘게 함락하지 못한 이후에 멸망했다.
    • 범점할 수 없는 강력한 막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작은 성 하나도 제대로 함락 못하는 걸 보니 별 거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깨닫고, 불만이 있던 다른 막부가 힘을 합쳐 쉽게 몰락시켰던 것.
    • 레퓨테이션(reputation)은 관측할 수 없는 특성을 관측가능한 증거를 바탕으로 형성하는 믿음을 의미한다. 가마쿠라 막부는 140년간 이어졌으니 강력할 거라는 믿음, 불세출의 스모선수는 전력을 다해 상대해도 질 게 뻔하다는 믿음 같은 걸 말한다. 레퓨테이션은 자기실현 효과가 있을 수 있는데(ex. 가마쿠라 막부는 강력하게 일본을 장악함 -> 반란을 일으키면 질 것 같으니 반란을 안일으킴 -> 가마쿠라 막부는 여전히 일본을 장악함 ->…) 레퓨테이션이 깨지는 근거가 생기면, 그 사건이 아무리 작은 것이어도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
  7. 담합과 배신의 게임이론 (믿었던 측근에게 배신당하는 이유는?)

    •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 센코쿠시대(전국시대)를 종식시킨 사람인데, 최측근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배신으로 아들과 함께 혼노지에서 죽임을 당했다.
    • 담합(collusion)은 담합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행위지만, 담합의 유지는 어렵다. 담합 가격보다 약간 더 낮은 가격을 혼자만 제시해서 큰 이득을 얻으려는 유인이 있기 때문이다. 반복 게임(repeated game)에서 담합이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은 (1) 모두가 충분히 인내심이 높고 (미래의 보상을 크게 후려쳐서 평가하지 않고) (2) 배신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의 크기가 크지 않아야 한다.
    • 오다 노부나가가 작은 시골의 영주였을 때는 배신해봐야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지 않았으나, 전국시대를 종식시키는 정도가 되면 배신했을 때 얻을 이득이 큰 상황이다. 현재까지도 아케치 미쓰히데가 왜 배신했는지는 (배신하고 11일 후에 죽어서)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반복 게임에서 배신의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었던 건 맞다.
  8.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확인하는 ‘밴드웨건 효과’ (사람들은 왜 양다리를 걸치는가?)

    • 일본의 최고 권력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세키가하라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어린 아들인 히데요리를 일본의 통치자로 삼을 것을 주장하는 서군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중심이 되는 동군이 격돌했고, 동군이 승리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장악하게 된다.
    • 이때 대부분의 무사들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나중에 승리하는 쪽에 붙겠다는 마음으로 관전만 하다가 돌아갔다.
    • 밴드웨건 효과는 남들이 하는 걸 편승해서 따라하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서도 밴드웨건 효과와 전투를 관망한 무사들이 직접 이어지지는 않아 보였음. 밴드웨건 효과는 대중의 인기에 편승하는, 일종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묘사하는 거지만, 무사들은 실제로 관망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 있다.)
  9. 게임 순서가 좌우한 오사카성 전투의 승패 (퍼스트 무버가 될 것인가, 세컨드 무버가 될 것인가?)

    •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오사카 성의 영주가 되었음. 도요토미 가문을 멸문시키고 싶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재건한 호코지 범종에 새겨진 문구에 트집을 잡아 오사카성을 공격하였음. 첫 번째 공격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난공불락의 요새이며 두 겹의 해자—성을 둘러싼 물길—때문에 접근이 매우 어려운 오사카성에서 퇴각할테니 바깥쪽 해자를 메우게 해달라고 요청함.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이를 승낙하였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실수인 척하며 두 해자를 모두 메워버림. 이후 다시 공격하여 쉽게 오사카성을 함락함.
    • 순차적으로 게임을 진행했을 때, 앞 사람이 취한 행동에 맞게 대응한 뒷 사람이 유리한 경우가 있다. (항상 그런 건 아니다. First-mover advantage가 있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해자를 메우면 철수하겠다고 말한 제안을 받아들이면 안됐었다. 반대로 철수를 하면 그 후에 해자를 메우겠다고 제안했었어야 했다.
  10. 인조와 조선이 놓친 경우의 수와 ‘혼합전략’ (오른손잡이 권투선수가 오른손을 썼는데 왜 실패했을까?)

    • 혼합전략은 여러 전략적 행위를 확률적으로 섞는 걸 말한다.
    • 가위바위보 게임을 생각해보면, 확정적으로 가위(바위, 혹은 보)를 내는 순수전략은 무조건 지는 전략이다. 상대는 이를 알고 바위(보, 혹은 가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는 가위/바위/보를 확률적으로 적절히 섞는 게 좋은 전략이다.
    • 오른손잡이 권투선수는 왼손을 꽤나 많이 섞어서 쓴다. 왜냐면 오른손으로만 펀치를 날리면 상대 선수는 이를 대응해 피하고 반격하기 때문이다.
    • 인조는 청나라가 공격해 올 거라고 할 때 ‘강화도 피신’이라는 순수전략을 사용했다. 이게 실패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
  11. 나폴레옹을 통해 보는 ‘대리인 문제’와 승리의 조건 (어째서 아랫사람에게 권한을 주는 조직이 성공하는가?)

    •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은 주인이 대리인을 선택하고, 주인의 목적과 일치하지 않는 목적을 가진 대리인이 의사결정을 하면 주인과 대리인의 보상이 결정되는 류의 문제를 말한다.
    • 대리인이 가진 정보와 주인이 가진 정보가 비대칭적이어서 문제 풀기가 어려운데, 대리인이 열심히 일하는 게 대리인 본인에게 가장 유리하도록 조건을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
    •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육군(Grand Army)을 만들었는데, 신분에 관계 없이 능력이 출중한 사람을 장교로 삼았고, 이게 프랑스 군인 개개인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주게 되어 승리를 이끌었다는 해석.
  12. 남북전쟁으로 살펴보는 ‘데드라인’ 문제 (명장으로 이름난 그는 어쩌다 최악의 전략을 선택했나?)

    •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뛰어난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패배가 명백한 상황에서도 돌격을 명령했고,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북군에게 크게 패했다.
    • 전략적 요충지였던 미시시피강의 빅스버그가 함락되어 북군에게 조만간 넘어갈거란 급박한 상황이 모든 전략을 고려하지 못하고 성급한 의사결정을 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13. 고르바초프와 ‘또라이 전략’ (착한 사람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어떤 전략을 써야 할까?)

    • 냉전시대의 최강대국이였던 소련은 1991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일방적 결정으로 사라졌다. (물론 다른 경제적 배경도 있었음)
    • 고르바초프는 선량하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는데, ‘또라이 전략’을 사용할 시도도 안했었다.
    • 또라이 전략은 이 책에서는 ‘내가 비합리적인 사람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함으로서 원하는 이득을 얻는 전략’을 의미한다. 가령 시장에 새로운 기업(entrant)이 진입하면 기존에 존재하는 기업(incumbent)은 진입기업과 공존하거나 커다란 손실을 감수하면서 출혈경쟁을 해 진입기업을 퇴출시키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 기존기업이 합리적이면 큰 손실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니 진입기업은 시장에 진입하게 될 텐데, 만약 작은 확률로 기존기업이 또라이라서 출혈경쟁을 할 낌새가 보이면, 진입기업은 진입을 꺼릴 수 있다. 즉 기존기업이 또라이일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함으로서 이득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고르바초프는 선량한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었으나, 또라이 전략이라도 써서 소련의 국익을 위하는 입장을 취하진 않았다.

총평

(한순구 교수님이 여기까지 들어와서 이 마지막 줄까지 읽지 않으리라 믿고 솔직히 쓰면) 역사를 잘 모르는 내가 읽기에 역사 썰은 재미있었고, 게임이론 컨셉을 넣으실 때는 억지로 가져다 붙인 부분도 있어 보인다. 그래서 역사–게임이론–교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부분도 더러 있다. 기업에 강연하시기에 좋은 책인 건 틀림없음.